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월호 7시간 (문단 편집) == 타임라인 == ||<-6>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2014년 4월 16일]]''' || || '''시간대''' || '''시각''' || '''박근혜 대통령 공식 행적''' || '''위치''' || '''검찰 수사 결과·언론 보도·관계자 증언''' || '''세월호''' || ||<|3> 08시 || 08:48 ||<|4> ? ||<|30> 관저[* [[김기춘]]을 비롯한 다양한 박 전 대통령 측 증인들이 '관저 집무실'이나 '관저에서 업무를 했다'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이는 그 자체로 기만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업무 공간인 동시에 생활 공간이며, 관저는 소수의 측근을 제외하면 철저히 경호 받는 대통령의 주거 공간이다. 우연히 회사 바로 옆에 집을 얻게 된 직장인의 예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관저면 관저고 집무실이면 집무실이지 '관저 집무실'이란 건 청와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 || 급격한 변침[* 하지만 국가안보실 첫 보고 문건에는 08시 35분에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정부가 발표한 시각과 실제 사고 발생 시각 사이에 13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http://v.media.daum.net/v/20171017190958201|#]]] || || 08:52 || || 최초 조난 신고 || || 08:55 || || 제주 VTS 교신 || ||<|7> 09시 || 09:19 || || 최초 속보 (YTN 뉴스 특보) || || '''09:30''' || --'''첫 서면 보고'''--[* 2017년 10월 12일 최초 서면 보고가 10시가 아니라 9시 30분이었음이 밝혀졌으나 2018년 3월 28일 검찰 조사 결과 이 역시도 조작으로 밝혀졌다. [[http://v.media.daum.net/v/20180328171054299|기사]]. 다시 말해 처음엔 9시 30분으로 조작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10시로 다시 고친 것이다. 즉, 첫 서면 보고 시각에 조작이 2번 있었다. 참고로 중앙부처 보고용 문서는 5분 단위로 기재하는 것이 관례다.] || '''조작으로 판명'''[* 2018년 3월 28일 검찰 조사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http://v.media.daum.net/v/20180328171054299|기사 참조]].] || || || 09:35 ||<|3> ? || || 세월호 '''52.8도''' 전복 || || 09:37 || || 진도 VTS 교신[* 침몰 전 최후의 교신이다. "선장이 상황을 판단해서 승객을 탈출시키라(진도 VTS)", "승객이 탈출하면 구조가 바로 되겠느냐(세월호)".] || || 09:39 || || 선원 7명 탈출 || || '''09:50''' || --'''첫 서면 보고''' -- || '''다시 10:00로 조작해 대외 발표''' || || || 09:54 || ? || || 좌현 완전 침수 || ||<|8> 10시 || '''10:00''' || ~~'''첫 서면보고'''~~[* 원래는 10시에 최초 서면 보고가 있었다고 발표되었으나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나온 문건을 보면 9시 30분에 최초 서면 보고가 있었다. 10시 최초 서면 보고는 [[박근혜 정부]]의 시간 조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 집무실에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 [[김기춘]]의 말이다. 정리하면 "서면 보고를 했기 때문에 집무실에 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이며, 바로 다음 질문에서는 "집무실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기상천외한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정상이다. 책임 회피를 위해 일부러 말을 빙빙 돌린 것이다.] || 중대본, 1차 공식 브리핑 || || '''10:15''' || '''--첫 번째 유선 지시--'''[*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 '''조작으로 판명'''[* [[http://v.media.daum.net/v/20180328171054299|기사]].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10시에서 11시 사이에 2번 유선으로 구조를 지시했다는 증거를 내놓지 못했으며, [[박범계]] 의원은 이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https://twitter.com/bkfire1004/status/813188929717272576|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http://www.nocutnews.co.kr/news/4705910|기사]].] || || || 10:17 || ? || || 세월호 '''108.1도''' 전복[br]'''골든타임 종료'''[* [[김기춘]]과 [[김장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김기춘·김장수·김관진·윤전추#s-1.12|2019년 3월 13일 진행된 관련 형사재판]]에서 10시 17분은 골든타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장수는 "[[이준석(선장)|이준석]]이 구조된 9시 30분이 진짜 골든타임"이라는 등 구체적인 주장을 했다.] || || '''10:20''' || '''첫 서면 보고'''[* 2018년 3월 28일 검찰 수사 결과 실제 최초 서면 보고 시간은 이때였음이 밝혀졌다.][*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안봉근]]은 [[김장수]]로부터 "대통령과 전화 통화 연결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뒤 [[이영선]]에게 차량 대기를 지시했다. 안봉근은 10시 12분 이영선이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청와대 본관을 나섰고, 10시 19~20분 관저 내실에 들어가 박근혜를 침실 밖으로 나오게 해 김장수와의 통화를 주선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10시 22분에 박근혜의 첫 유선 지시가 나온 것이다.] || || || '''10:22''' || '''첫 번째 유선 지시'''[* 실질적으로는 이 시간에 유선 보고를 받으면서 사건에 대해 처음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보고 받은 것일 뿐, 사고 대처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는 증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 || 마지막 구조[* [[https://youtu.be/YsaBbS2cPSY|10시 21분경 박준혁 군]]. 스스로 탈출한 인원을 구조한 것이다.] || || '''10:30''' || --'''두 번째 유선 지시'''--[* "해경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현장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거짓임이 밝혀졌다. [[http://www.nocutnews.co.kr/news/4705910|#]]] || '''대통령이 지시한 근거가 없음''' || || || 10:32 ||<|14> {{{+5 '''?'''}}} || 청와대, 보고 영상 독촉 || || || 10:37 || || '''세월호 완전 침몰'''[* 즉, 최초 변침 시점부터 완전 침몰까지 불과 '''109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큰 배가 불과 109분 만에 완전히 침몰한 이유로는 평형수 부족과 격실의 폐쇄 미조치 등이 꼽힌다.] || ||<|5> 11시 || 11:00 || || 중대본, 147명 구조 발표 || || 11:06 || || 오보: '''전원 구조 통보'''[* 물론 오보이며, 세월호 유가족들의 뒤통수를 친 사건들 중 하나가 되었다.] || || 11:18 || || 선수만 남긴 채 침몰 || || 11:34 || 유선 보고를 받음(세월호와 무관한 사안)[* [[인도네시아]] 대통령 방한 시기 조정 관련 사안.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65285|JTBC 기사]].] || || || 11:43 || 유선 보고를 받음(세월호와 무관한 사안)[* [[자율형 사립고]] 관련 사안에 대해 유선 보고.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65285|JTBC 기사]].] || || ||<|2> 12시 || 12:00 || 혼자 관저에서 점심 식사를 함[* [[한상훈(셰프)/냉장고를 부탁해|당시 청와대 조리장]]의 증언([[http://naver.me/F1lwICn6|채널A 보도]]).] || || || 12:50 || 유선 보고를 받음(세월호와 무관한 사안)[* 기초연금법 국회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해 최용원 고용복지수석과 통화.] || 희생자 2구 발견 || || 13시 || 13:00 || || 희생자 1구 발견 || ||<|2> 14시 || 14:00 || 관저에서 [[정호성]]의 보고를 받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3&aid=0007675004|기사]].] || || || 14:15 || '''[[최순실]]·[[문고리 3인방]]과 회의'''[* [[http://v.media.daum.net/v/20180328171054299?f=m?rcmd=rn|기사]].] || || || 15시 || 15:22 || 전속 미용사 2명이 청와대 관저로 들어옴[* [[http://news.jtbc.joins.com/html/217/NB11373217.html|JTBC 보도]]. 파면된 이후에도 삼성동 사저에 들어왔던 정송주, 정매주 자매이다.] || || || 16시 || 16:37 || 전속 미용사 2명이 청와대를 나감[* [[http://news.jtbc.joins.com/html/217/NB11373217.html|JTBC 보도]].] || || || 17시 || '''17:15''' || '''중대본 방문'''[* 여기서 그 유명한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망언을 했다.] || 중대본 || || 희생자 1구 발견 ||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 그때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는데.[* 세월호 침몰 사건은 3년 전, 즉 2014년이었다.] (중략)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밀회를 했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 >[[박근혜]], 2017년 1월 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 >대규모 재난과 같은 국가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그 상황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효과까지 갖는다. (중략) 앞으로도 국민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그 직책을 수행할 것이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불성실 때문에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우리는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다. >---- >[[2016헌나1 결정문]](탄핵 심판 결정문),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법조인)|이진성]]의 보충의견 당초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박근혜는 당일 오전 10시 참사 관련 첫 보고를 받았고 15분과 30분 2차례 구조 지시를 내렸다. 그 후 대통령의 행적이나 지시 사항이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7시간 후인 오후 5시 15분 중대본을 방문함으로써 참사 후 비로소 공식 석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참고로 참사가 뉴스 특보로 처음 YTN에 보도된 때가 '''오전 9시 19분'''이고 세월호가 선수만 남긴 채 완전 침몰한 것이 '''오전 11시 18분'''이다. [[http://past.media.daum.net/sewolferry/timeline/|세월호 참사 72시간 타임라인 보기]].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박 대통령의 행적이 묘연한 시간은 오히려 7시간보다 늘었다. 10시 15분과 30분에 유선으로 2번의 지시를 했다는 [[청와대]] 측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박범계]] 의원은 이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https://twitter.com/bkfire1004/status/813188929717272576|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http://www.nocutnews.co.kr/news/4705910|기사]]. 그런데 2017년 10월 12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 의해 '''최초 보고 시점으로 알려진 오전 10시라는 시각마저 조작된 것'''이 밝혀졌다. 2018년 6월 22일 진행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김기춘·김장수·김관진·윤전추|김기춘·김장수·김관진·윤전추의 관련 형사재판 첫 공판기일]]에서 공개된 [[박준우(정치인)|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정무수석]]의 검찰 제출 문건 2014년 5월 22일자 '세월호 사고 관련 상황 일지' 문건과 '4·16 골든타임 상황일지' 등에 따르면 9시 50분이 첫 보고 시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검찰은 [[박준우(정치인)|박준우]]가 제출한 서면을 공개하면서 "첫 보고 시간을 9시 30분으로 고치려다가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센터와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양경찰청]]의 통화 녹취록과 맞지 않는 모순이 발견돼, '9시 50분에 보고됐다'고 기재했다"며 "[[국가안보실]]이 대통령에 대한 첫 보고시간을 최대한 당기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지만 '9시 50분 설정'도 앞뒤가 맞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 '앞뒤가 맞지 않게 된 이유'로는 "9시 50분에 작성된 보고서에 9시 57분에 발생한 상황이 적시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들며 "이것이 사건이 시작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2018년 7월 25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김기춘·김장수·김관진·윤전추]] 증인으로 출석한 이 모 전 [[정무수석비서관|정무수석실]] 행정관은 해당 문건의 작성자였다. 이 모는 "09:50은 국가안보실에서 통보한 시간이었다"는 취지의 증언을 남겼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5&aid=0002761796|#]] 기사에 따르면 세월호 당일 첫 보고 시각이 '''오전 9시 30분'''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오전 9시 30분과 첫 유선 보고를 한 시간으로 추정되는 오전 10시 15분 사이의 45분간의 행적이 불분명해지고 어떤 일을 했기에 최초 보고 시점까지 조작하여 행적을 은폐하려 했는가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시간도 아니고 이 45분은 '''세월호가 본격적으로 침몰하고 구조 작업이 시작된 그 시간''', 바로 '''[[골든아워|골든타임]]'''이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는 세월호 7시간 의혹이 아니라 '''세월호 7시간 반의 의혹으로 고쳐 불러야 하게 됐습니다.''' 대통령 보고 시각을 조작해서 검찰과 법원, 심지어 탄핵심판에까지 이용하고, 무엇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국민 모두를 속였습니다. 광장에서 외쳤던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이 또다시 참담한 정당성을 찾게 되는 순간입니다. >---- >[[손석희]] 앵커, 2017년 10월 12일[* 세월호 첫 서면 보고 시점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공개된 날이다.] [[JTBC 뉴스룸]] [[http://naver.me/G76AOSut|원문]] 심지어 이 보고서의 시각뿐만 아니라 핵심 내용마저 조작된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5174.html|한겨레]]. 이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10시 15분에 첫 지시를 내렸다는 것 자체도 불분명하다. 10시 15분에 박근혜가 처음으로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단 하나도 시원하게 밝혀진 게 없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2016년 12월에 있었던 청문회의 내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유섭]]'''(당시 [[새누리당]] 의원): 10시 15분에 대통령이 안보실장께 지시하셨다고 돼 있어요. 지시 사항 기억 안 나시죠? >'''[[김장수]]'''(당시 [[국가안보실장]]): 청와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세월호와 관련해서 '이것이 팩트다'라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제가 보고 제가 기억을 더듬어서 말씀 드리는데... 즉, 당시 국가안보실장이었던 김장수는 정말로 10시 15분에 박근혜가 지시를 했는지 아닌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당시 관저에 있었다고 했던 전 행정관 [[윤전추]] 또한 '대통령이 관저 집무실에 있었기 때문에 통화 여부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라고 진술했다. 아래에 자세하게 말하겠지만 관저 집무실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10시 15분에 정말로 박근혜가 이러한 지시를 내렸는지는 통화 기록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17년 초에 [[헌법재판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에 대통령 대리인단에게 박 전 대통령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통화 기록을 제출하라고 했다. 하지만 한 달 뒤에 돌아온 대리인단의 대답은 '못 찾겠다.'였다. 오래된 통화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 통상 통화 내역의 보관 연한은 1년이다. 그러므로 2014년 4월 16일 당시의 통화 기록은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37&aid=0000165189|기사 참조]]. 만일 10시 15분의 첫 지시 사항마저도 거짓말로 밝혀질 경우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는 그 날 오전 9시 30분부터 중대본에 나타난 17시 15분까지 7시간이 아닌 8시간의 행적이 비어 버린다는 것이고, 참사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았으면서도 천하태평으로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고 국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방임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세월호 7시간 30분과 직접 연관된 사항은 아니지만 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는데, 국가안보실에서 발견된 문건에 기록된 세월호 사고 시각은 08시 35분으로 기록되어 있어 정부가 발표한 사고 시각인 08시 48분과 13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http://v.media.daum.net/v/20171017190958201|미디어오늘]]. 이 사안도 매우 심각한 것이, 당시 청와대가 이 시간대의 세월호의 상태를 처음부터 인지하지 못할 만큼 무능했거나 모종의 이유로 정부의 발표 시각과 실제 문건에 기록된 시간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가결된 후 [[청와대]] 서버가 무더기로 폐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http://naver.me/FulIGvC4|#]] 이 서버 안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당시 특검이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려 했으나 청와대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어떠한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서버를 폐기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2018년 3월 28일, 참으로 [[경천동지]]할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 조사 결과 최초 서면 보고 시각은 당초 [[박근혜 정부]]에서 주장했던 10시도 아니었고 2017년 10월에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된 문건을 토대로 밝혀낸 9시 30분도 아닌 10시 20분이었던 것이다. 즉, 이미 골든타임이 다 지난 뒤에야 첫 서면 보고를 올렸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처음엔 마치 사고 직후에 곧바로 보고를 올린 것처럼 꾸미려고 9시 30분으로 조작했다가 최초 보고 시각과 박근혜의 첫 지시 시각의 간극이 너무 많이 벌어지니 그걸 줄이기 위해 다시 10시로 조작한 것이다. 즉, 조작이 2번 있었던 것이다. 또 10시 15분에 박근혜의 첫 번째 지시가 있었다는 것 또한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다. 실제 박근혜의 최초 지시 시각은 10시 22분이었다. 다시 말해서 최초 보고 시각과 최초 지시 시각 모두 조작된 것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http://v.media.daum.net/v/20180328171054299?f=m?rcmd=rn|기사 참조]]. 또한, 2018년 6월 22일 진행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김기춘·김장수·김관진·윤전추|김기춘·김장수·김관진·윤전추]]의 첫 공판기일에서 공개된 [[박준우(정치인)|박준우]]가 검찰에 제출한 2014년 5월 22일자 '세월호 사고 관련 상황 일지' 문건과 '4·16 골든타임 상황일지' 등 문건에는 첫 보고 시간이 9시 50분으로 적혀 있었다. 즉, 9시 30분 → 9시 50분 → 10시 등 3회에 걸친 조작이 있었던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세월호 참사 당일에 [[최순실]]이 있었다는 것과 박근혜는 국민들이 물 속에서 사투를 벌이던 그 순간에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즉, 박근혜는 10시 넘어서까지 골든 타임이 다 지나간 사이 늦잠을 자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최초 서면 보고를 받은 10시 20분 이후에도 다른 업무 전화를 받고 점심을 먹는 등의 행위를 한 후 오후 1시부터 약 90분 동안 올림머리를 하다가 오후 2시 15분에 최순실이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고를 받고 박근혜에게 중대본에 갈 것을 '''지시하자''' 그제야 3시 22분부터 16시 37분까지 머리 손질을 하고 5시 15분에 중대본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근혜는 직무유기를 했고 [[비선실세]] 최순실이 이미 그때부터 국정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는 것이 4년 가까이 봉인되어 왔던 세월호 7시간의 비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